불심(불자)의 방

[스크랩] 사십구재(四十九齋)란?

心泉 심상학 2009. 2. 24. 23:36

49재는 죽은 이의 명복을 빌고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하기위해 49일동안 개최하는 천도의식이다.

이 49재는 죽은 날로부터 매 7일째마다 7회에 걸쳐 지내기때문에
달리 칠칠재(七七齋)라고도한다.

이 49재에 대하여 우리는 몇 가지 의문을 가져 볼 수도 있다.


첫째, '왜 하필이면 49일을 기한으로 삼아 재를 지내는가'하는 것이다.
그 까닭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生)을 받을 때까지 49일동안

생과 사의 중간상태인 중음신(中陰身)이 되어 떠돌면서

다음 생의 인연처를 정하게 된다.

따라서 이 49일동안 유가족이 영가를 위해 재를 올리며 공덕을 지어주면, 나쁜 업을 지은 영가는 불보살님의 가피 덕분에

고통의 세상으로 나아가지않게되고,
평범한 업을 지은 영가들은 훌륭한 공덕을 이루어

보다 더 좋은 인연처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2) 이 49일 동안은 영가의 식(識)이 매우 맑아져 있기때문에

살아생전보다 부처님의 법문을 더욱 잘 알아들을 수 있다.

따라서 이 기간동안 법문을 정성껏 들려주면 영가가

매우 지혜로와져서 지난 세상에 대한 애착을 끊고,

쉽게 해탈을 이루어 행복의 나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의문은 7일마다 한번씩 재(齋)를 지내는 까닭이다.
여기에도 두가지 뜻이 간직되어 있다.

1) 사람이 죽어 중음신(中陰身)이 되면 보통 7일에 한 번씩

기절하였다가 다시 깨어나며,
그때마다 몹시 불안해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아울러 7일마다 한번씩 여러가지 색의 두려운 빛들이 보이고

환경이 바뀌게된다.

따라서 그 주기에 맞추어 재를 지내줌으로써,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좋은 빛을 따라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게끔 하기위해 7일마다 재를 지내준다는 것이다.

2) 명부세계(冥府世界)를 관장하는 시왕(十王)의 심판과

형벌과 관련시켜 7일마다 재를 지내고 있다.

명부는 고통이 매우 심한 곳이고,

10대왕은 고통받는 명부의 죄인을 관장하고 있다고 믿기때문에,

불교와 도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10대왕의 관용을 비는 열 번의
재(齋)를 지내도록 하고 있다.

 

곧 제 1 진광대왕부터 제10 오도전륜대왕까지 열 분의 시왕이

죽은 이를 차례로 심판하는 초 7일, 2.7일, 3.7일, 4.7일, 5.7일, 6.7일, 7.7일과 100일째 되는 날, 1주기, 2주기 때

재를 올려 죄업을 사하도록 한 것이다.

이 가운데 앞의 일곱은 49재, 뒤의 셋을 백재(百齋),

소상재(小祥齋), 대상재(大祥齋)라 칭하고 있다.


이와같이 각 대왕들이 49일 중 매 7일마다 한번씩

죽은 이가 지은 생전의 업을 심판하여 벌과 상을 주므로,

그날마다 재를 지내줌으로써 부처님의 가피아래
벌을 면하고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마치 재판을 할 때 훌륭한 변호사를 사서

좋은 판결을 얻어내고자하는 것과도 같다.

총괄적으로 이를 정리하면,

49재는 7일마다 일곱 번의 재를 지내줌으로써 영가의 공덕을 쌓아주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영가가 지혜를 밝혀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하는 천도법이다.

그러므로 유가족이 49재를 지낼 때에는

이러한 뜻을 잘 새겨 재를 모셔주어야한다.
곧 마음으로, 몸으로, 물질적으로 정성을 다하여

재를 올려야하는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떠한 정성을 기울여야하는 것일까?

먼저 한 편의 이야기를 음미해보자.
*

중국 송나라 때, 이부상서라는 높은 관직에 있었던

범중암 대감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생각하였다.

'어머니의 크신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법에 맞게 49재를 올려

좋은 세상으로 보내드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으리라.

하지만 관직에 있으면서 재를 모시면 국가의 일도 온전히 할 수가 없고
상주 노릇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범중암은 사표를 제출한 다음, 가족 모두를 데리고 현묘사로 들어갔다.

현묘사는 2백명 대중이 사는 큰 절이었다.

그곳에서 범중암을 비롯한 남자들은

스님네 심부름과 청소 등의 일을 하였고,
부인, 딸, 며느리 등 여자들은 공양을 짓는등의

부엌일을 도맡아서 행하였다.

이렇게 온 가족이 망인을 위해 공덕을 쌓으며

세 번 째 재를 올린 날 저녁, 범중암 대감의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 다급하게 청을 하는 것이었다.

"아들아, 큰일났다. 생전에 저지른 나의 죄가 너무 많아

49재가 끝나기도 전에 판결이 이루어진다는 구나.

나는 틀림없이 나쁜 과보의 세계로 떨어지게 되어있으니,

부디 나를 도와주려무나."

"어머니,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나를 위해 공덕경(功德經)을 읽어다오. 너무나 다급하다."

꿈에서 깨어난 범중암은 주지스님께 달려가

어머니께서 현몽하여 당부한 내용을 아뢰었고,
주지스님은 영가에게 읽어주면 특히 공덕이 크다는 지장경,

법화경, 능엄경, 원각경, 금강경,
아미타경, 관음경 등의 공덕경중에서 금강경을 택하였다.

그리고, 현묘사 스님 2백명을 모두 동원하여 매일 새벽,

오전, 오후, 저녁의 네 차례 동안 금강경을 독송하였다.

이렇게 경을 독송한지 5일째 되는 날 밤,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매우 기뻐하며 말씀하셨다.

"고맙다, 아들아. 현묘사 대중스님 모두가 공덕경을 읽어준 공덕으로

나는 큰 가피를 입어 죄업을 면하게 되었단다.

더군다나 어제는 관세음보살님이 오셔서 경을 읽어주셨다.

현재 현묘사에는 관세음보살님께서 떠나지않고 계시니,

나를 대신하여 관세음보살님께 감사를 드려다오."

"어머니, 어느 분이 관세음보살님이십니까?"

"날이 새거든 대중스님들이 모인 자리로 가서,

'어제 오전 시간에 경을 반만 읽고 밖으로 나간 스님이 누구시냐'
고 여쭈어보아라. 그 분이 관세음보살님이니라."

날이 밝아 범중암 대감은 대중스님들을 찾아가

어머니께서 일러주신대로 물었다.

대부분의 스님들은 모르겠다며 두리번거리기만 하는데,

한 스님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였다.

"내가 그랬어요. 법당의 대중은 많은데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자라는 것 같아 도와주려고 나갔다오."

그러면서 노출시키지 말 것을 당부하는표시로

손가락을 입에 대며 뒷걸음질을 쳤다.

범중암 대감은 바닥에 엎드려 감사의 절을 올렸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세웠을 때에는 이미 관세음보살이

보이지 않았다고한다.

상주(喪主)의 정성과 천도

이제 이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49재를 지내는 유가족(遺家族)의 자세에 대해 논하여보자.

범중암 처사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이부상서라는 높은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온 가족을 데리고 현묘사로 들어갔다.

물론 오늘날과 같이 효행보다는 경제윤리를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천도를 위해 온 가족이 부엌일 청소일 등을 하면서

49재를 올렸던 그 정성만은 꼭 배워야한다.
그와 같은 정성이 없으면 망인의 천도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49재를 지내주면 바로 영가들이 천도가 된다고 생각하는

불자들이 많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지않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신 바 있는 고산스님의 경험을 예로 들어보자.

고산스님이 부산 칠산동에 있는 법륜사 주지를 맡았을 때,
법당을 청소하다보니 부처님 탁자밑에 위패와 사진이

한 트럭분이나 있는 것이었다.

수십 년동안 모아두었던 그것들을 없애기위해 고산스님은
3일동안 재를 지내주었다.

그런데, 그 3일동안 수많은 남녀가 꿈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갓을 쓴 사람, 보따리를 든 사람,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 등

수백명이 어디론가 가고있었다.

스님은 그들에게 물었다.

"어디로 갑니까?"

"주인이 가라고하여 떠나는 것이니 갈 곳도 정해주시겠지요."

고산스님은 3일동안의 재를 지낸 다음,

부처님 탁자밑의 위패와 사진을 모두 꺼내었다.

그런데, 꿈에 나타났던 이들은 모두 그 사진들속의
얼굴이었다.

"아! 그랬었구나."

영가들이 천도되지않고 법당에 머물러 있었음을 느낀
고산스님은 영가들이 좋은 나라로 갈 것을 축원하면서
위패와 사진들을 태웠다.

그 뒤 고산스님이 서울 조계사 주지를 맡았을 때는
법륜사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7일간 정성껏 천도재를 지내주고,

세 트럭분이나 되는 조계사 법당의 위패와 사진을 태웠다.

그리고, 나를 만났을 때 고산스님은 말하였다.

"49재를 지내준다고하여 모두가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생전에 욕심과 집착이 강했던 영가는
단순한 49재만으로는 쉽게 천도가 되지않는 듯합니다."

실로 고산스님의 경험담처럼 형식적인 49재만으로는
망인의 천도가 쉽게 이루어지지않는다.

그럼 어떻게해야 망인을 천도시킬 수 있는가? 반드시
유가족의 정성이 따라주어야한다.

유가족의 정성이 천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49재를 지내는 재자(齋者)들에게 늘 부탁드린다.

"상복을 입고있는 동안에는 '나'혼자가 아닙니다.

49재를 지내는 동안은 망인과 내가 같이 있음을 꼭 명심하십시오.

'나'의 말, '나'의 행동하나가 망인을 좋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느냐,

진흙바닥에 처박히게하느냐를 결정합니다.

정성성(誠) 한글자를 마음깊이 새기고 천도하십시오."

그런데, 오늘날 49재를 모시는 유가족들은 어떻게 하고있는가?
대부분의 상주들은 재를 올리는 사찰의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 조차 거들지 않는다.

절에다 일정액의 돈을 드리고나서 재가 있는 날에만 찾아와,
영단을 향해 잔을 올리고 절을 하면 상주노릇을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

부모의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대리상주인 사찰의 스님들에게 모든 것을 미루어버린다.

부모의 임종을 접한 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이들이,
채 며칠도 지나지않아 '나'의 몸 편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렇게하여서는 영가의 공덕을 쌓아준다는 49재의 의미가 크게
반감되어버리고, 영가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출처 : 경찰불교
글쓴이 : 정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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