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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의 추억들 모아모아

心泉 심상학 2010. 11. 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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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허 생원은 말뚝에서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작가 이효석(李孝石·1907∼42)이 ‘메밀꽃 필 무렵’도입부에 그린 강원도 봉평 ‘5일장’의 풍경이다.
5일장은 장돌뱅이와 서민들이 빚어내는 공간이다.대전의유일한 5일장(4·9일)인 유성장.수수한 옷차림의 떠돌이장수들이 골목길에 빼곡히 좌판을 깔아놓고 옷과 생선 등을 판다.
방금 시골에서 올라온 듯 한 할머니는 각종 봄나물과 메주를 길거리에 풀어 놓고 팔고,풀빵장수는 ‘풀빵 사세요’를 외치며 지나가는 손님을 잡아끈다.
5일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콩,깨,조,수수 등의 곡식과 사과,배 과일에서부터 이불 등 공산품까지 즐비하다.봄이 와서인지 지난 19일 유성장에는 유난히 호미와 낫 등 농기구와 묘목,난(蘭)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6·25 이후 50년간 칼을 갈아 왔다는 할머니는 “예전에는 손님이 많았는데 요즘엔 돈이 흔해서인지 이빨 빠진 칼을 다듬어 다시 쓰는 이들이 별로 없다”면서도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시골에도 자동차가 늘어나고 주변에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5일장이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90년 73곳에 이르던 충남지역 5일장이 현재 52개로 30%가까이 감소했다.전국적으로도 87년 750곳에서 30% 정도줄어 지금은 526곳만 남았다.
30여년 전만 해도 나무를 파는 시골 사람들이 5일장에서자주 눈에 띄었다.나무를 한 짐 지고 장터로 나가 팔아 명태를 한 꾸러미 사가지고 해질녘에 돌아오고는 했다.대장간에는 칼이나 쟁기를 만들려는 이들로 붐볐다.
또 국밥 집에선 구수한 김이 인정처럼 모락모락 피어 올랐고 서민들이 모여 세상과 이웃들의 얘기로 꽃을 피웠다.정보망이 없던 그 시대의 5일장은 시골의 유일한 ‘열린광장’이었다.
장이 끝나면 객줏집에서는 술판과 투전판이 벌어지고 작부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당시의 5일장은아빠,엄마가 고무신과 꼬까옷을 사줄 수 있는 날이어서 꼬마들도 손꼽아 기다리며 덩달아 신바람이 났었다.
충남도 관계자는 “요즘 5일장은 예전 같은 맛은 나지 않지만 이마저 갈수록 줄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발췌 :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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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주요 도시의 옛 모습

     아래 15째 사진 밑의 주석;
 
   "당시 京성과 釜山을 오가던 특급 [아카즈키[赤月]
(あかづき=붉은 달)] 一等전망차"
 
        아까쓰끼=あかつき= __ = 새벽녘, 여명,  이라고 생각됩니다   김광배

 

 

 

주요도시의 옛 모습

 

  

1920년대 남대문통의 모습. 

 

1935년 청량리역 앞의 모습.

  

 1910년 용산역의 모습.

 

 덕수궁 안에서 바라본 경성(현 서울)

그래도 제법 높은 건물이 많이 보인다.

 

 

 남대문로와 종로가 만나는 1905년 무렵의 보신각 주변.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현재의 을지로 입구에서 광교 쪽을 조망한 경관.

콜로니엄 양식의 건물들이 제법 고색창연하다.

길 오른쪽 붉은색 벽돌 건물은 지금의 우리은행이다.

 

 [THE QUEEN OF KOREA] 1894. 11. Frank G. Carpenter에

‘서울의 중심가’라는 제목으로 실린 남대문로의 모습.

거리 양쪽에 한옥 상가 앞쪽으로 초가로 조성된 가가(假家)가 늘어서 있어

상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07년 3월에 찍은 광화문 거리.

 

 헤르만 잔더가 1907년 9월 무악재를 넘다가 찍은 사진.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북한산이다.

 

 경성부청(지금의 서울시청) 건물.

 

 1925년의 서울역.

 

일제강점기 사진엽서의 하나.
당시 경성과 부산을 오가던 특급 [아카즈키(あかづき=붉은 달)] 일등전망차의

호화스러운 모습으로 일본 고관 및 친일 상류인사들이 주로 이용했다.

  

일제강점기 부산역사.

 

부산 세관의 모습.

 

1930년대 부산 초량 입구.

 

1930년대 부산 청사의 모습.

 

 

1930년대 부산 연락선 출항 모습.

 

1940년 부산 대청동.

 

일제강점기 대구역 앞 광장.

 

일제강점기 대구 서문시장. 

 

일제강점기 대구시청의 모습.

 

일제강점기 대구 본정통의 모습.

 

일제강점기 대구 서문시장의 모습. 

 

1940년대 대구역에서 바라본 중앙통의 모습.

 

 일제강점기 대구 원대통 거리.

 

인천의 일본인 거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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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전역의 모습.

 

 

일제강점기 대전역 주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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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9월 충청남도 대전군 회덕면 송촌리 쌍정당의 모습. 

 

일제강점기 수원역 모습.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예전엔 집에서 탈곡을 하였기 때문에 집주위가 엉망이죠~

어릴적 탈곡한 집단을 날랐었죠~.

 

보리타작 콩타작은 도리깨로 하엿답니다.
 
콩타작을 하엿나 봅니다. 잔일들이 많죠~

바람을 일으키는 풍로가 있엇는데 안보이는것 보면

60년대 이전인가 봅니다.




전형적인 초가마을

마을 주변에 버드나무들이 많앗어요~


여유잇는  가족의 모습..(살밖에서)

손으로 하루죙일 모내기 하고나면 허리는 물론 눈이 퉁퉁..

경상도말로 논도가리가 크네요~
모내기하는 사람이 많아서 다행입니다.

예전에는 천수답이 많앗죠~

이맘때면 초벌 논매기 하였죠~손톱이 없으면 힘이들죠..

동네 아이들의 모습..

여름이면 매미잡고 구슬치기하고 놀았는데..

먼~ 시장길(신장로) 산중시골이라 오리나 십리길을 가야한답니다.

 당시 까만 비누도 많았는데..

풀베기 운동(퇴비용)ㅡ4H 구락부기도 보이네요

 

요즘 신세대분들은 예전에 마을 입구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었던

이 퇴비더미 사진을 보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굼하지만...

특히 농촌에 사셨던 분들은 마을 입구에 커다란 풀더미를 쌓아놓고

마을 또는 읍.면단위로 목표량을 정해놓고 담당공무원의 독려속에

경쟁을 벌이며 퇴비증산에 사활을 걸었던 시절을 기억하시겠죠.

 

 

 

 

부역이라 하여 마을별로 많이들 동원되엇죠~

마을 진입로 농로길 동민들의 부역으로 길을 만들곤 하였죠..

 

 한짐씩 이네요~(경상도에서는 거울이라 하엿는데..)

여름내내 하였던것 같네요..

 

 

 

 새마을 모자를보니 생각이 나네요~

예전에 성남에 새마을 연수원 교육도 받았는데 지금도 잇나 모르겟네요~

 

남녀노소 불문하고 산과 들에서 풀을 베어 지게에 지고 새마을기를 든

마을이장이나 작업반장의 뒤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며

집합장소로 이동하던 그때...높은 분들이 지나가면

잘 보이도록 도로 옆 가장자리에 산더미처럼 최대한 높게 쌓아

실적에 따라 마을별로 시상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모아 퇴비를 만든답니다.

 

 마을마다 퇴비증산 운동이 활발히 벌어졌죠~

 

초가집 이을때 이엉과 용마루를 엮고 잇네요~

초가지붕 이을때면 굼벵이들이 정말 많앗죠~

그땐 징그러워 먹지도 못햇는데..요즘에는 고단백으로 당뇨에 좋다죠..

 내년에 심을 씨앗들 처마에 매달아 보관하였죠~

 도리깨로 콩타작 하는가 봅니다.

  당시 농촌에는 잔일들이 항시 많앗죠~

 노오란 옥수수가 먹음직 스럽네요~

 감나무 사이로 벼 탈곡하는 모습..

 등목이라하여 예전에 많이들 하였죠~

 집집마다 장독대가 잇었죠~

 예전의 부억모습(경상도에서는 정지라 하였죠)

 고부지간 맷돌에 메밀을 갈고 있나 봅니다.

 짚신을 만들어 파는가 봅니다.

소는 재산목록 1호에 소가없으면 농사를 못지엇죠~

쟁기질 보기보담 어렵죠~


가을걷이에 새참을 나르고 있나봅니다.(막걸리에 국수..)

배가 고프면 허리가 더아팠어요~어찌나 기둘리던지..

 

歷史 스패셜 100選 (저장 해 두고 보세요)

 

 


歷史 스패셜 100選 (저장 해 두고 보세요)
 

1   영상복원 - 무용총 고구려가 살아난다. 2   고종의 X파일! 군함을 구입하라
3   발해는 왜 동해를 건넜는가?   4   고구려군, 아차산 최후의 날
5   고려시대, 우리는 로켓을 쏘았다   6   조선 최대 정치 이벤트 - 화성 회갑잔치
7   한반도, 고인돌왕국의 수수께끼   8   조선판 사랑와 영혼 - 400년 전의 편지
9   신라의 왕궁은 어디에 있었나   10   철저 분석, 고구려 - 수나라 전쟁
11   최초발굴, 나주 아파트고분의 미스터리   12   3000년 전의 고래사냥 - 울주 암각화의 비밀
13   미륵사는 무왕의 승부수였다   14   신라산 양탄자는 일본최고의 인기상품이었다
15   거북선 머리는 들락거렸다   16   가야 흥망의 블랙박스, 철갑옷
17   3일간의 재판, 영국인 베델을 추방하라   18   사비시대의 타임캡술, 백제 대향로
19   진주대첩, 3천이 3만을 어떻게 이겼나   20   영상복원 - 해상왕국 고려의 군함
21   완도 바다 속 3만 청자의 비밀   22   새롭게 밝혀지는 운주사 천불천탑의 비밀
23   신라인들도 원샷을 했다 - 삼잔일거   24   김흥도의 풍속화는 국정자료였다
25   대원군이 만든 459장의 보물지도   26   고구려기획 제1편 - 고구려 비밀의 문, 광개토 대왕비
27   고구려기획 제2편 - 동방의 피라미드, 장군총   28   청동 거울의 비밀 - 일본'천황'은 백제인인가
29   5천만자의 하이테크, 팔만대장경   30   가야인은 성형수술을 했다
31   최초공개! 임진왜란 최후 전투도   32   고려부인, 염경애
33   한국전쟁 최대 미스터리 - 북한군, 왜 3일간 서울에서 머물렀나?   34   왜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나
35   추적, 화랑세기 필사본의 미스터리   36   2500년 전 한반도는 전쟁중이었다.
37   허준은 과연 스승을 해부했을까?   38   조선판 사건 25시 - 박여인 변사사건
39   삼별초, 진도에 또 다른 고려가 있었다   40   왕건의 훈요십조는 조작되었는가?
41   추적, 환단고기 열풍   42   한글은 집현전에서 만들지 않았다
43   석굴암 불상에도 색을 칠했다   44   미스터리 추적, 신라의 소정방 피살사건
45   외교비사 - 서희는 거란 80만 대군을 어떻게 물리쳤나   46   명량대첩의 비밀 - 13척이 어떻게 333척을 이겼나
47   세종 때 조선에 재팬 타운이 있었다   48   66세 신랑, 15세 신부 - 영조의 결혼
49   이몽룡은 실존 인물이었다.   50   5백년의 대공사 - 조선에 운하가 있었다
51   300년 전 '여성군자'가 쓴 요리백과 - 음식디미방   52   <밀레니엄특집>대고구려 제1편 광개토대왕 정복루트를 가다 - 염수의 비밀
53   <밀레니엄특집>대고구려 제2편 광개토대왕 정복루트를 가다 - 미지의 장벽, 대흥안령 산맥   54   <밀레니엄특집> 대고구려 제3편 - 고구려 철갑기병, 동아시아 최강이었다
55   <밀레니엄특집> 대고구려 제4편 - 고구려인의 재산 목록 1호는 수레였다   56   조선왕조실록이 산으로 간 이유는?
57   제주에 천년 왕국이 있었다   58   온천궁궐, 온양행궁의 비밀
59   조선왕가 최초의 의문사 - 누가 소현세자를 죽였는가   60   풍납토성 지하 4미터의 비밀
61   순장, 과연 생매장이었나   62   역사 버라이어티, 왕건 코리아
63   역사추적, 심청의 바닷길   64   조선시대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65   신라 최후의 미스터리, 마의태자   66   고구려비가 중원에 서 있는 까닭은?
67   조선시대에도 자유부인이 있었다   68   원효는 왜 파계승이 되었나?
69   로마유리 2000년 전 신라에 오다   70   제3의 세력, 내시
71   현장확인, 정선이 그린 300년 전 한강   72   조선왕조 기피인물 1호, 허균
73   북녘땅 고구려 고분벽화 무엇을 그렸나?   74   불국사 - 그 이름에 담긴 비밀
75   조선시대 대학에도 학생회가 있었다   76   조선시대 역관은 갑부였다
77   고려개국의 예언서, 도선비기는 실재했나?   78   조식이 지리산에 열두 번 오른 까닭은
79   연개소문, 독재자인가? 영웅인가?   80   신윤복은 왜 여인을 그렸나?
81   발굴! 스티코프의 비밀수첩, 김구는 왜 북으로 갔나?   82   삼국통일의 교두보, 삼년산성의 비밀
83   조선시대 궁녀는 전문직이었다   84   고려 말 왜구는 정예부대였다
85   최초공개 - 탐라 순력도, 제주는 군사요새였다   86   금관은 죽은 자의 것이었다
87   개천절 기획2부작 제1편 - 비밀의 왕국 고조선   88   개천절 기획2부작 제2편 - 집중분석, 고조선인은 어떻게 살았나?
89   흑치상지 묘지석 - 1604자의 비밀   90   궁예
91   토우 - 신라인의 사랑과 진실   92   2000년 전, 늑도는 국제무역항이었다
93   800년 논쟁, 삼국사기의 진실은   94   천재시인 최치원은 조기 유학생이었다
95   발굴, 밀양 고분벽화의 비밀   96   이성계의 또 다른 왕궁, 회암사
97   추적! 임나일본부의 정체   98   사라진 보물창고, 외규장각
99   기생 홍랑의 지독한 사랑   100   100회 특집 - 천년 전의 벤처, 해상왕 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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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행복한노래사랑
글쓴이 : 성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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