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천 자작시·글
업에 대하여
心泉 심상학
2017. 1. 3. 17:17
업에 대하여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요
내일은 오늘의 상속이다.
전생은 금생의 과거요
내생은 금생의 미래다.
사람들은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전생을 생각하고 내생을 바라보며
금생을 살아가는 이는 흔치 않다.
왜 어제는 돌아볼 줄 알면서 전생은 묵살하고, 내일은 기약하면서 내생을 잊고 사는 것일까? 그것은 전생과 내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며,
지금 이 순간에 너무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빙산의 모습과 같이 우리의 삶 또한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크기 마련이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에 대한
애착 때문에, 보이는 것 밑에서 우리를
움직이고 있는
‘그 무엇’을 잊은 채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한다고 하여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할 뿐 아니라,
보이는 세계까지 지배하고 있다.
‘그 무엇’이란 바로 ‘업(業)’이다.
내가 지어 내가 받는 업이 그것이다.
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악과(惡因惡果)라. 이러한 인과의 법칙을 확실히 믿고서,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이 ‘나’의 지은 바에 대한 과보라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능히 업을 녹여
향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지만, 고난에 처하여
남을 원망하거나 회피만 하는 사람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만다.
원인을 뚜렷이 알 수 없는 현재의 괴로움,
현재의 불행은 모두가 지난 세상에 내가 지은 악업의 과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한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지고
지난 빚은 차츰 줄어들어,
갈수록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요
내일은 오늘의 상속이다.
전생은 금생의 과거요
내생은 금생의 미래다.
사람들은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전생을 생각하고 내생을 바라보며
금생을 살아가는 이는 흔치 않다.
왜 어제는 돌아볼 줄 알면서 전생은 묵살하고, 내일은 기약하면서 내생을 잊고 사는 것일까? 그것은 전생과 내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며,
지금 이 순간에 너무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빙산의 모습과 같이 우리의 삶 또한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크기 마련이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에 대한
애착 때문에, 보이는 것 밑에서 우리를
움직이고 있는
‘그 무엇’을 잊은 채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한다고 하여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할 뿐 아니라,
보이는 세계까지 지배하고 있다.
‘그 무엇’이란 바로 ‘업(業)’이다.
내가 지어 내가 받는 업이 그것이다.
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악과(惡因惡果)라. 이러한 인과의 법칙을 확실히 믿고서,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이 ‘나’의 지은 바에 대한 과보라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능히 업을 녹여
향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지만, 고난에 처하여
남을 원망하거나 회피만 하는 사람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만다.
원인을 뚜렷이 알 수 없는 현재의 괴로움,
현재의 불행은 모두가 지난 세상에 내가 지은 악업의 과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한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지고
지난 빚은 차츰 줄어들어,
갈수록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