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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예방"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心泉 심상학 2014. 6. 5. 11:10

-암예방을 위한 편지 (1)-

 

글: 박진생 신경정신과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스트레스가 암을 만든다.

 

흔히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데, 이는 암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30여 년에 걸쳐서 정신과환자들을 보아 오면서 특히 그러한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스트레스는 대개 무리한 욕심이나 과욕이 그 불씨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여자 환자 분이 있었는데, 처음에 우울증 때문에 저를 찾아 왔었습니다.

오랫동안 다니던 안정된 직장을 그만 둔 뒤에 의욕이 저하되고 만사가 귀찮아져서 심지어는

죽고 싶은 마음까지 커진 상태였습니다.

특히 안정된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 둔 뒤에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컸었습니다.

저는 심리치료를 통하여 이 환자 분이 가진 잠재적인 능력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을 자각시켰고,

이를 통해서 환자는 우울증으로부터 극적으로 벗어나는데 성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죽을 정도의 정신적인 고통에서 한번 벗어나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일종의 반동형성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이 환자 분은 새로운 마음으로 이 전에 하던 일 대신에 파트타임으로 비슷한 일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능력이 있고 열심히 하시던 분이라 이 일이 생각보다 잘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점점 더 바빠지면서 돈을 많이 벌게 되었습니다.

저의 귀에는 몇 년이 지난 뒤에 이 분이 저를 찾아와서 말하던 것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선생님! 이제 모든 고생은 끝이 난 것 같아요. 벌써 아파트가 세 채가 되었답니다.”

저는 정말 신기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다 죽어간다던 환자가 이렇게 회복이 되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능력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파트가 세 채가 되었다는 말에서 부러움과 함께 일말의 염려가 저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혹시라도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라는 염려가 생겼지만,

그래도 실패를 한 것 보다는 훨씬 좋은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하면서 저의 기우에 불과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일년 쯤 지났을까요?

이 환자 분은 가지고 있던 아파트 세 채를 한꺼번에 다 처분을 한 뒤에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 나서

큰 돈이 될 수 있는 투자처에 투자를 하게 되었다고 말을 했습니다.

전 재산을 투자를 했는데, 잘 만 하면 수십억원의 돈을 벌 수가 있을 것 같다면서 들떠서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환자 분이 하도 확신에 차서 말을 하기에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세히 들어보니까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저에게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 되어 버렸습니다.

투자한 것은 생각보다 잘 풀리지가 않았습니다.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졌습니다.

왜냐하면, 남의 돈까지 빌려서 더 공격적으로 투자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환자 분은 자신이 투자한 것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돈이 쪼달리기 시작하자, 전세로 살고 있던 집을 빼어서 월세로 옮겼습니다.

나중에는 그것도 안되어서 남편마저 급한 빚을 갚기 위해서 안정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퇴직금을 받아서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였지요.

이렇게 해서 시작된 이 들 부부의 긴 고통의 여정은 쉽게 끝나지 않은 채 약 10여 년의 세월을 끌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이 들 부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동안에 이 환자 분이 받은 정신적, 경제적인 스트레스는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환자 분은 크게 낙심을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동안은 실날 같은 희망을 가지고 버티어 왔는데, 그 것마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기면서

그 동안에 이 환자를 지탱해왔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절망감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오랜 세월 동안 정신과 환자들을 치료해 오면서 사람은 누구나 철썩 같이 믿어오던 희망이 무너질 때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목격해왔습니다.

서구의 유명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철학책에서 “바로 절망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기술을 하고 있는데 저는 정말 그 말에 동감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철썩같이 믿어 오고 있는 어떤 생각이나 희망이 굳어져서 자신의 사고의 일부로써 자리잡게 되는 것을

학술적인 용어로는 “Scheme(스킴: 정신 또는 사고체계 속의 도식)”이라고 하는데

이 스킴이 무너질 때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며, 이것이 잘못 되면 단기적으로는 우울증이나 심한 경우

자살까지도 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또 장기적으로 이러한 스트레스가 지속이 되면 암을 비롯한 여러 가지 만성질환이 초래될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 환자도 예외가 아니어서 마침내 암으로 진단을 받았다는 비보가 얼마 전에 저에게 전해져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환자 분은 약 10여 년의 기간에 걸쳐서 자기가 봉착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왔습니다.

흔히 어른들이 “그 놈 참 용쓴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렇게 용을 써야 하는 상황이 1년, 2년 정도 지속되는 것은

우리 몸이 견딜 수 있을지 모르지만, 5년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그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어떤 누구도 암과 같은 질환에 노출이 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암의 진짜 원인은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 상황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지속이 되다가,

어떤 결정적인 충격으로 인하여 희망을 버리고 절망을 하게 될 때에 온다고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욕심이나 과욕을 부리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마음이나 육체의 결핍경험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면서 모든 것이 충족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꼭 필요한 시기에 충족되어야 할 것들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일종의 한(恨)과 같은 감정으로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지요. 우리는 그런 것들을 애응지물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에 집안이 가난하고 돈이 없어서 죽도록 고생을 했다면

그 사람은 나중에 돈에 한을 품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어떤 가치보다도 돈을 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사는 뜻대로 되지가 않지요.

돈에 대한 열등감이나 한이 많은 사람일수록 돈을 쫒아가는 경향이 있고 이런 경우 돈은 도망을 치기 일쑤이지요.

결과적으로 앞의 암환자 경우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건강을 상하기 일쑤일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돈을 버는데 성공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문제이기 때문에 설령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었다고 해서 건강해지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한 때 증권가에서 애널리스트로 명성을 떨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의 전문 분야는 선물, 옵션 투자인데 자신이 직접 투자를 하지는 않지만,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하여

사람들이 투자에 성공을 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예측이나 조언이 워낙 정확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사람을 신과 같이 떠 받들었고,

이 때문에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랄 때에 집이 가난하여 배를 골면서 학교를 다녔고,

이 때문에 공부는 잘 했는데도 대학교를 제대로 진학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온갖 고생을 다했으나, 제대로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선물, 옵션을 하면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적은 종잣돈을 모아서

스스로 투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워낙 천성이 부지런하고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 밤잠을 설쳐가면서 연구를 거듭하여

오랜 세월동안의 고심 끝에 마침내 자신 만의 어떤 비법을 터득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투자가 완전히 실패하여 깡통을 차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 모든 어려움을 딛고

 선물, 옵션계에서 국내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을 받는데 성공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이런 위치에 이르기까지 그가 받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아무리 투자에 대한 조언을 잘 해 준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돈을 벌게 해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돈을 많이 벌자 자신이 젊은 시절부터 너무나 갖고 싶은 것들부터 사기 시작했는데,

그 첫 번 째 것이 전자 기타였습니다.

저는 우연히 그의 집을 방문했는데 벽에 걸린 고가의 전자기타가 수십대나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가 자랑스럽게 말하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이 차는 우리나라에서 10대 밖에 수입이 안 된 스페셜 에디션인데 최고 인기 연예인인 모모씨가 일호차를 받았고,

자신이 두 번 째로 샀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요.

그는 원하던 땅을 사서 그토록 자신이 갖고 싶어하던 건물까지 지었는데, 건물의 상량식을 마치고 오는 길에

갑자기 머리가 깨어질 듯한 심한 두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갔는데, 거기에서 비강암으로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던 것을 위해서 죽도록 노력해서 이제 그토록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루기 직전에 암이라는

치명적인 질환에 걸렸다는 점에서 이전에 예를 든 경우와도 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는 암에 걸린 뒤에 그가 썼던 병상일지가 너무나 애절하고 심금을 울려서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토록 원했던 건물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부인을 뒤로 한 채로....

비단 돈 뿐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명예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을 위해서 그토록 소중한 왕위도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타고날 때 부터의 성격이나 기질 같은 것도 이러한 경향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암과 같은 난치병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어느 시점에 발병을 할 수 밖에 없는

로드맵을 가지고 태어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라면서 서서히 이러한 성격들은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 습관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쪽(自重自愛)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당연히 건강하게 살아 갈 것이고,

그렇지가 않고 그러한 습관이 자신을 파괴하고 자기를 비하하는 쪽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언젠가는

자신을 상하게 하고 자신의 건강을 해치게 될 가능성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암이 생기기 쉬운 성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사람의 성격은 각양각색이라서 일률적으로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다음과 같은 성격의 소유자들은 암에 걸리기 쉬운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주의를 기우릴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1)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경우

 

완벽하게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때로는 필요한 것이고 나쁜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항상 완벽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필요할 때만 완벽하면 되는 것인데, 매사에 완벽하려고 하는 것은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 완벽한 것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것일까요?

완벽하게 하려면 그만큼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이 때문에 보통사람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완벽주의적인 사람들은 지나간 사소한 실수나 실책 또한 후회하고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자책을 하는 경향이 큽니다.

이렇게 되면 항상 마음이 긴장되어 있고 안심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항상 자신도 모르게 경직이 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이러한 긴장은 우리 몸안의 세포들 또한 긴장을 하게 만들어서 DNA의 구조에도 좋지 않은

긴장감을 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지나치게 화를 참거나 억압하는 경우

 

지나치게 화를 많이 내는 경우도 문제가 되겠지만, 반대로 화를 너무 참거나 억압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화병’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이것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병의 원인에 대한 이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만병의 근원은 ‘화’라고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가 아는 여자 분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분은 중매결혼으로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남편은 전통적인 경상도 사람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이들 부부에게는 아이가 생기지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의 잘못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여자 분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여러 차례에 걸친 불임시술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들 부부는 마침내 딸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이 여자 분은 입양을 하기는 했지만,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데 대해서 남편에 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입양된 아이에 대해서도 한편으로 매우 안 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함부로 꾸중을 하거나 화를 내지를 못했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이 여자 분은 남편에 대해서 불만이 있어도 표현을 제대로 하지를 못했고,

입양된 아이에게도 불쌍하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가능한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남편에게나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서 잘 하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 지나치게 잘 하려고 한다”라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너무 피곤해서 밥을 제대로 못 먹을 상황이 되었는데,

그 원인을 알아보니까 췌장암으로 판정을 받았습니다.

결국 마음 속으로는 권위적인 남편이나 입양된 딸을 받아들이지를 못했지만,

겉으로는 그 들에게 너무 잘 하려고 자신을 억압한 것이 엄청난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가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화를 참고 억압하는 것은 일종의 무의식적인 습관이 작용을 하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는 성격 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주위사람들이 볼 때에도 “저 사람은 사람이 너무 착하고 양심적이다.”라는

평을 듣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심한 긴장감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3) 누군가를 심하게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경우

 

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누군가를 지나치게 사랑해서 문제를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를 심하게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와 손아래 동생인 외삼촌은 어려서 어머니를 병으로 잃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어머니는 다섯 살이었고 손아래 외삼촌은 세 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였습니다.

너무 젊은 나이에 부인을 잃게 된 저의 외할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재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 명의 어린아이를 돌보아 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었지요.

당시 할아버지는 꽤 잘나가는 관직에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처녀 장가’를 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상대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기는 하지만, 그 당시로는 보기 드문 사범대학을 나온 인텔리 규수와 재혼을 하게 된 것이었지요.

그런데 새롭게 재혼한 부인이 연달아 세 명의 딸과 두 명의 아들을 낳으면서 전처소생인 저의 어머니와 외삼촌이 소외감을

느끼게 되면서 두 분 모두 심리적으로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밑의 동생들이 태어날 즈음에 이미 어느 정도 성장이 되었기 때문에 계모에게도 크게 불평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순종을 하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 대신에 외할아버지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가 있었고 계모로부터도 큰 미움을 받지 않을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저의 외삼촌은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잃은 것만 해도 억울한데 계모가 들어와서 줄줄이 동생을 낳으면서 외할아버의 사랑을 다른 동생들이

차지하는 것이 괴로웠던 것이지요.

거기에다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계모 외할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전처 소생의 자식들 보다는 자신이 나은

아이들을 끔직하게 사랑을 하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어린 시절에 외갓집에 처음으로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날 식사를 하는데 메뉴가 그 당시로는 보기 드문 카레라이스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카레라이스라는 것이 워낙 귀하고 생소했기 때문에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가 카레라이스를 잘못 먹으니까 계모 외할머니가 저에게 하는 말이 “야 이 놈아, 이 카레라이스가 얼마나

귀한 것인데 그것도 못 먹니!”라고 꾸중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외할머니가 계모였다는 것을 안 뒤에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그 말에 상당한 적대감이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나은 아이들도 많아서 신경이 쓰이는데 출가외인인 전처 소생의 큰 딸이 아이까지 데리고

친정이랍시고 찾아온 것이 매우 못 마땅 했던 것이겠지요.

아무튼 손자인 저가 이정도로 불편한 감정을 느낄 정도인데 저의 외삼촌은 오직 했겠습니까?

외삼촌은 철저히 계모와 대립을 했고 그 불만을 몽땅 밖에서 풀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치감치 불량 청소년이 되어서 나쁜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면서 온갖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지요.

다행히 외삼촌의 성격의 원 바탕은 나쁜 편이 아니어서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는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외삼촌은 입만 열면 계모를 못 마땅해 하고 원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저의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그 이후에 계모외할머니가 그 많던 외할아버지의 재산을

다 정리한 뒤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자 외삼촌의 증오는 극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한평생 계모 외할머니를 미워하고 증오하던 외삼촌은 나이가 50대에 이르게 되자 그만 임파암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외삼촌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병문안을 갔는데 불행하게도 외삼촌은 마지막 생명의 불꽃이 꺼지기 전까지도

의식은 매우 명료했습니다.

저는 항암치료를 받아서 머리가 빠지고 피골이 상접한 외삼촌의 눈에서 아직도 계모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암에 걸렸을 때에 특히 좋지 않은 것은 마음 속에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 가득 차 있어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할 때 일 것입니다.

고대 그리이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들의 몸이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원소로 이루어졌다는

4원소설을 주장하면서 이러한 4대 요소는 사랑의 감정이 충만할 때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긍정적인 쪽으로

결합을 하지만, 반대로 서로 투쟁할 때에는 서로 분열하고 대립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암세포야 말로 오랜 세월에 걸친 억압된 분노와 원망이 응어리져서 신체적인 변화로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4) 지나치게 걱정을 많이 하거나 비관적인 성격을 가진 경우

 

저가 암을 예방하는데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도 있지만,

사실 저의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저 자신 또한 암가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암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저의 부친이 간암 선고를 받은 것은 저가 젊을 때인 1988년이었는데, 그 당시 저는 군의관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군인의 신분으로 휴가를 오래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저는 어떻게 해서라도 부친 곁에서 간호를 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치의 말이 이미 암이 진행이 되어서 복수까지 찬 상태여서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기껏해야 한 두달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성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친은 저의 두 손을 꼭 잡고 마침내 마지막 힘든 숨을 거두셨습니다. 저는 부친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참지 못해서 한 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부친은 평생을 병마와 싸우면서 힘겹고 고단한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부친은 형제가 매우 많은 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는데, 할머니는 자식들을 이미 많이 낳았는데다가,

시집살이에 워낙 부대껴서 저의 부친을 낳았을 때는 이미 젖이 말라서 나오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할아버지께서 동네를 다니면서 젖동냥을 얻어서 부친을 먹였다고 합니다.

그마저도 얻는 것이 힘들 때는 미음을 끓여서 먹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의 부친은 어린시절부터 늘 병약하고 몸이 약해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공부는 꽤 잘해서 그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서울의 명문학교에 진학을 했지만,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폐결핵이라는 그 당시로는 치명적인 병에 걸려서 몇 사발이나 되는 피를 교정에서 토하고는

 낙향을 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그 무렵에 ‘파스’라는 특효약이 발명이 되어서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한창 희망에 부풀어야 할

학창시절에 폐결핵으로 인해서 학업이 중단된 탓인지 매사를 어둡고 비관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사회생활에도 잘 적응을 하지 못했고,

적은 일에도 너무 신경을 많이 쓰고 사소한 것에도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걱정들은 대부분 불필요한 것들이거나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라고 괜히 자신의 건강에도 해로운 영향을 미친 셈이지요.

저는 부친께서 어린 시절에 보다 나은 돌봄을 받을 수 있었다면 몸과 마음이 더 건강했을 것이고,

성격도 훨씬 밝고 적극적으로 되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랬더라면, 그렇게 이른 나이에 간암으로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요즈음도 생각을 하곤 합니다.

설령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이나 태도는 그 사람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성격에 따라서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는 지레 겁을 먹고 불안에 떨면서 자포자기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단, 1퍼센트의 가능성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희망이라는 끈을 놓아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