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이하 귀농 농가 수 급증
작년 5060가구…3년 만에 8배
초기부터 돈 들어갈 곳 수두룩
공동체 생활에 적응 어려움
10명 중 8명은 도시로 돌아와
농촌 문화ㆍ생태부터 체득하고
자기만의 철학 있어야 성공
"귀농이 아름답다고요? 제발 그런 환상은 깼으면 좋겠습니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 '젊은협업농장' 매니저 정영환(33)씨는 흙이 잔뜩 묻은 손으로 쌈 채소를 뽑아 들며 청년귀농의 고충을 토로했다.
2011년 협동조합의 형태로 젊은이들 3인이 모여 시작한 '젊은협업농장'은 귀농을 희망하는 청년들의 지역 적응을 돕고 농사 짓는 법도 가르치는 곳. 매스컴을 통해 청년 귀농의 모범 사례로 주목도 받았다. 정씨는 미학전공으로 석사까지 마쳤지만 시골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2011년 귀농해 이 농장 초기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정씨는 더 이상 청년귀농을 낭만적으로만 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정씨는 "하루 10시간을 일해도 낮은 농산물 가격에 연 1,000만원이 채 안 되는 수입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며 "장점도 많지만 시골에서 유유자적하려는 젊은이들도 현실 앞에 좌절하는 것이 바로 귀농"이라고 말했다.
시골행이 늘어나기는 한다지만
청년 귀농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아파트 담벼락보다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창문이 더 좋다는 어느 노랫말처럼, 경쟁의 굴레를 벗어나 자연을 찾아가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30대 이하 귀농ㆍ귀촌 가구수는 2010년 761가구에서 2013년 5,060가구로 무려 8배 가량 증가했다. 증가율만 따지자면 은퇴 후 인생 2모작을 위해 귀농하는 60대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 이들은 육체노동과 지식을 결합한 '브라운 칼라'로 불리며 젊은 인력이 시급한 농촌에서 신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골의 삶에 적응 못해 다시 떠나는 이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귀농을 장려하는 정부는 그 실태는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있어, 귀농 실패 사례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억대연봉을 자랑하는 청년 농부들이 언론을 장식하는 것과는 달리, 낯선 공동체 생활과 자본의 한계를 피부로 느낀 대다수의 귀농청년들은 농경생활에 회의를 갖는다는 것이다. 귀농을 희망하는 청년들의 모임인 '명랑시대'의 공동 설립자 유희정(37)씨는 "귀농교육을 받은 청년들 10명 중 8명은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고 보면 된다"며 "재수, 삼수 끝에 귀농에 성공하는 이도 있지만 그만큼 귀농이 어려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은 자본의 논리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구윤규(26)씨는 신세대 농부를 꿈꾸며 재학중이던 2011년 3월 논산으로 귀농했지만 2년 여의 시골생활을 접고 작년 2월 서울로 올라왔다. 대학시절 농촌봉사활동에서 느낀 시골의 건강함에 매료돼 무작정 시작한 벼농사가 실제로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일푼이었던 구씨는 운 좋게 3,305㎡(1,000평)의 논을 빌려 벼농사를 시작했지만 임대료, 비료 구입, 농기계 임대 등 각종 비용을 제한 후 손에 쥔 돈은 1년 간 고작 100만원이었다. 그나마 구씨는 농민회 활동을 하며 월 100만원 생활비를 지원받고 거처까지 제공받아 다른 이보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구씨는 "농사만 지어서 생활하고 저축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며 "수익을 내려면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하지만 빚을 내 농지를 매입해도 수익이 적어 대출금 상환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귀농하는 청년들이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돈'이다. 연봉과 스펙으로 줄 세우는 도시에 염증을 느껴 찾은 시골이지만 자본 없이 농사 짓기란 불가능하다. 자금을 어느 정도 갖추고 귀농하는 중장년층과 달리 20~30대 청년들 대부분은 무일푼이거나 5,000만원 미만의 적은 자금으로 시작한다. 결국 자급자족 이상의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대출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촌지역으로 전입한 자에 대해 귀농교육을 100시간 이수하면 세대당 3억원 이내의 농업창업 지원금을 연간 2% 이자로 제공하고 있다. 거치기간 5년에 대출상환은 10년 이내지만 갚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귀농 청년들의 속사정이다.
작년 3월 제주도로 귀농해 감귤농사를 지으려는 박세혁(38)씨 역시 돈 앞에서 초연하기 힘들다고 한다. 박씨는 11년간 도시계획 엔지니어로서 살며 저축한 8,000만원과 농업창업 지원금 1억 5,000만원을 빌려 작년 8월 농지 3,305㎡(1,000평)을 매입했다. 문제는 돈 들어갈 곳이 앞으로 한 두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수원 정비에 필요한 기계와 물품 등을 고려하면 1억원은 더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박씨는 "귀농한 젊은 사람들 열에 아홉은 정착지원금을 빌린다고 보면 된다"며 "내가 산 땅도 6개월 만에 평당 5만원이나 올랐을 만큼 비싸졌다. 귀농을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화의 차이
개인화된 청년들에게 지역민들의 관심은 '간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기만의 영역과 시간이 확실한 젊은이들에게 옆집 밥숟가락 개수까지 파악할 만큼 친밀한 시골의 정서는 오히려 불편하기만 하다. 전남 순천에서 1년째 귀농생활 하고 있는 강수진(32)씨는 "아침에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안부를 묻는 이웃 때문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오랜 공동체 생활로 옆집의 일상은 물론 일생까지 알게 되는 시골에서 젊은 이방인들은 온 마을의 관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일거수일투족이 뉴스처럼 퍼지는 마을에서 청년들은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날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제주도에서 귀농인 교육을 하는 샛별감귤농장대표 김종우(56)씨는 "칠순, 팔순 잔치 등 마을 행사나 소일거리에 온 주민이 참여할 때가 많은데 개인생활에 익숙한 젊은이들은 빠지려는 경향이 있다"며 "소문이 빨라 안 좋은 인식이 퍼지면 결국 견디지 못해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민과의 조화 없이 안정적인 귀농생활을 상상하기 어렵다. 농사 경험이 일천한 청년들이 혼자 농사짓기란 불가능함은 물론 농지 매매 같은 고급정보 역시 지역 주민을 통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NGO활동을 마치고 충남 홍성군에서 3년째 귀농생활 중인 백모(39ㆍ여)씨는 요즘 땅을 매입하려고 알아봐도 통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기존에 땅 소유주들은 친한 이들을 통해 내놓기 때문에 백씨까지 소식이 닿지 않는다는 것. 어렵게 매물이 나오더라도 정보가 부족해 바가지를 쓸 염려가 있어 매입에 조심스럽다. 백씨는 "10년, 20년을 살아도 외지인은 외지인"이라며 "이웃과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지만 젊은 이방인에게 고급 정보를 알려 줄만큼 가까워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농촌 관계자들은 젊음 하나만 믿고 귀농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농사에 뜻을 품을 것인지 평온한 시골생활이 목적인지 자기만의 철학 없이 무작정 내려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귀농 생활에 대한 가치관이 명확해야 귀농의 현실에 직면하더라도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 전국귀농운동본부 박호진(39) 사무처장은 "오랜 기간 사회 생활을 한 중장년층도 애먹는 게 귀농"이라며 "도시생활에 익숙한 젊은이들일수록 농촌의 문화와 생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인생의 쉼표가 아닌 도돌이표를 찍고 도시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