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심가뿌리를찾아서

700년 명가 - 청송 심씨

心泉 심상학 2010. 12. 1. 02:22

 

공지사항, 조선조 중,후기 3대 상신 가문/청송심씨, 삼한갑족, 700년 명가!


선조 3대 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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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덕부[문하좌시중, 좌정승, 수상]

1385년 문하찬성사 겸 동북면 상원수로 이성계와 함께 북청에 침략한 왜구를 토벌하고,

1388년 서경도원수로 이성계를 도와 위화도에서 회군했으며,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9공신의 한 사람이 되었다.
1393년 회군공신1등이 되고 청성백에 봉해졌으며, 1399년[정종1] 좌정승에 이르렀다.

다섯째 아들[온]은
세종 국구가 되고 여섯째 아들[종]은 태조의 부마가 되었다.

심온[영의정]
파조 심강의 5대조이다. 고려조에서 문과하여 간관이 되었다. 그의 딸이 1408년[태종8] 충녕군 도와 결혼
하여 빈이 되고, 1418년 충녕대군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경빈에 봉해졌으며, 충녕대군이 세종으로 즉위하
자 국구로서 영의정에 올랐다. 1418년 사은사로 명나라에서 귀환하던 중 동생 정이 병조판서 박습과 함께
군국 대사를 상왕[태종]이 처리한다고 비난한 것이 화근이 되어 대역의 옥사가 일어나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으로 압송, 사사되었다. 무고로 밝혀져 뒤에 복관되었다.

심회[영의정]
파조 심강의 고조부이다. 아버지[온]가 신원되자 벼슬길에 나가 1457년 공조판서, 1461년 형조판서,

1463년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1466년 좌의정이 되고 이듬해 영의정에 올랐다.

1471년 원상으로 정무에 참여하고 1473년 청송부원군에 봉해졌다.


파조의 아버지, 영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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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원[영의정]
파조 강[명종 국구]의 아버지이다. 김안국의 문인으로 1522년 문과하였으며,1526년 문과 중시에 급제하였
다. 1537년 동부승지, 1543년 한성부 판윤, 1545년 호조판서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지내고 영의정에 이
르렀다. 경학에 밝고 문장을 잘 했다. 정사를 잘 돌보아 능력있는 영의정으로 명망이 있었다.


파조 명종 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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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국구]
1543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명종 국구로 청릉부원군에 봉해지고,1548년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1563년 이조판서로 세도를 부리던 이양이 기대승, 허엽, 윤두수, 박순 등을 제거하려 했다, 이에 심강과 그
의 아들 의겸이 그들을 구출하고, 이양을 제거하여 사림으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4명의 영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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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열[영의정]
1593년 문과하여 4도 관찰사를 지내고 1623년 호조판서가 되었다. 국가 재정을 잘 보기로 유명했다.

1638년 우의정, 1643년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를 잘 썼다.

심수현[영의정]
1704년 문과하여 이태좌 등 16인과 함께 홍문록에 올랐다. 1714년 양양부사로 선정을 베풀어 충청도 관찰
사에 승진했다. 1722년 공조판서,1724년 병조판서를 지내고 우의정을 거쳐 1733년 영의정에 이르렀다.
1734년 청나라에 가는 사은사에 관상감원을 수행시켜 달력만드는 신법을 연구해 오게 했다.

정사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여 훌륭한 영의정으로 평가 받았다.

심환지[영의정]
1771년 문과하여 규장각 제학, 이조판서 등을 거쳐 1798년 우의정에 올랐다.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하자 영의정이 되어 원상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김구주와 같은 벽파로서 신유사옥을 일으켜 반대파를 숙청했다.

심순택[영의정]
1850년 문과하여 대사성, 충청도 관찰사, 양관 제학 등을 지냈다. 그뒤 예조, 형조, 이조의 판서로 일했으
며, 1884년 우의정이 되었다. 갑신정변 실패 후 사대당 내각이 설 때 영의정에 올랐다. 이 때 청,일 양국의
정치적, 외교적 압박으로부터 고난을 겪었다. 1897년 원상이 되고 기로소에 들었다.


경종 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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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
음보로 사옹원 첨정을 지내고 경종 국구가 되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청은부원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효숙이다.

영조 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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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능권
영조의 딸 화령옹주와 결혼하여 청성위가 되었다.

1801년 사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805년 종척집사가 되었다.

1806년과 1808년 두 차례에 걸쳐 동지사로 청나라를 더 다녀왔다.

13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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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충겸은 병조판서로 호성공신 2등에 오르고 청림군에 추봉되었다. 시호는 충익. 글씨를 잘 썼다.
심택현은 이조와 공조, 형조, 예조의 판서를 두루 지냈다.
심   수는 이조판서로 기로소에 들었다.
심이지는 형조와 호조의 판서를 지내고 동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 왔다.
심풍지는 예조판서를 지내고 도총관, 한성부 판윤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심능악은 이조,예조,병조의 판서를 두루 지냈다.
심의원은 삼사를 거쳐 판서를 지냈으며 기로소에 들었다.
심의면은 형조판서를 지냈다.
심경택은 한성부 판윤과 공조, 형조,예조의 판서를 지냈다.
심승택은 형조, 예조의 판서와 한성부 판윤을 지내고 동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와 기로소에 들었다.
심이택은 한성부 판윤, 이조와 형조,호조의 판서를 지냈다.
심상훈은 이조판서를 거쳐 판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심응택은 판서를 지냈습니다.

19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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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명세는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공조참판 겸 호위대장에 올랐다. 시호는 충숙이다.
심의신은 이조참판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심의겸은 1563년 이량으로 인해 사림이 화를 입게 되자 이량을 탄핵했다.
심평은 공조참판으로 사은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와 예조참판을 지냈다.
심장은 병조참판을 지냈다.
심공은 이조참판을 지냈다.
심악은 이조참판을 지냈다.
심관은 공조참판을 지냈다.
심관지는 부총관, 병조참판을 지냈다.
심기태는 병조참판을 지냈다.
심진현은 예조참판을 지냈다.
심응태는 대사성과호조참판을 지냈다.
심영택은 대사성과 이조참판을 지냈다.
심기택은 호조참판으로 동지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와 병조참판에 올랐다.
심상목은 대사간,대사헌, 대사성을 거쳐 이조참판을 지냈다.
심상학은 예조참판을 지내고 영국,독일,프랑스, 러시아,벨기에 등 5개국의 전권대사로 활동했다.
심상찬은 참판을 지냈다.
심의복은 호조참판을 지냈다.
심이지는 이조참판을 지냈다.


3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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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1682년 문과에 급제하고 승정원에 등용되어 정언,교리를 지냈다.

        1696년 승지를 거쳐 1697년 전라도 관찰사에 올랐다.

        고사에 밝았으며,문장에 뛰어나고 필법이 정묘했다.

심유; 1669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교리, 사관 등을 지냈다.

        경사에 밝고 시문과 음률에 능했다.

심능숙; 음보로 태인현감을 지냈다. 문장으로 이름이 있었으며, 시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가문소설인 [옥수기]를 한문으로 써서 1888년 국문본으로 번역하여 9권을 간행했다.

          남영로의 [옥루몽]과 함께 애독되었다.


청백리,
심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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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졸년; 1791년-1845년. 생부는 능악. 자는 순흠. 1810년[순조10] 사마시에 합격하고

1829년 주부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문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에 올랐다.

그뒤 중궁전승사관에 임용되고 1836년 충청도 관찰사로 나갔다.

1838년 병조참판을 거쳐 대사간, 이조참판, 경기도 관찰사를 지냈다.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조손 입기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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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돈녕 심능악과 영의정 심순택은, 조손이 기로소에 들었다.


숭정처사, 태백5현의 일인, 심장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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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오현 제위(太白五賢 諸位)

-------- 각금당 정민공 심장세-----------

각금당 심장세는 명종의 장인 심강(沈鋼)의 증손이며 서인의 영수 심의겸의 손자이다. 1594년에 태어나
1660년에 몰했다. 자는 덕조(德祖). 호는 각금당(覺今堂). 1624년 이괄의 난 때 포의로 임금을 호종하여 금
부도사가 되었으며, 1637년 정묘호란 때 왕을 호종하여 부사가 되었다.

학문과 덕행으로 절의를 지켜 태백오현의 1인으로 불리워졌다. 증이조판서. 시호 정민(貞敏). 사덕사에 배
향되었다.
------- 포옹 문절공 정양-----------

1600년에 태어나 1668년에 몰했다. 자는 안숙(晏叔),호는 포옹(抱翁)ㆍ김장생 문인이다. 1618년 사마시
에 합격하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강화도로 피난했다. 1661년 장령을 거쳐 시강원 진선에 이르렀다.
증이조판서. 시호는 문절(文節). 학덕으로 태백오현(太白五賢)의 칭을 듣고 사덕사에 배향되었다.

-------- 두곡 개절공 홍우정 ------------

두곡 홍우정은 형조판서 홍가신의 손자이며 이조판서 홍우원과 청백리 홍우량의 형이다.
1595년에 태어나 1656년에 몰했다. 자는 정이(靜而 ),호는 두곡(杜谷 )이다. 1616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학이 뛰어나 대신의 천거로 왕자사부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했다.
그뒤 직장ㆍ공조좌랑 등의 벼슬이 내렸으나 나가지 않았다.
숭정처사로 세인들의 존경을 받아 태백오현의 1人 으로 불리워졌다. 증이조판서. 시호 개절공(介節公) 문
원서원에 배향되었다.

-------- 손우당 정민공 홍석 ------------

손우당 홍석은 증조ㆍ고조 양대 영의정에 증조부가 대제학을 지낸 명문 출신이다. 1604년에 태어나
1680년에 몰했다. 자는 군서(君敍),호는 손우당(遜愚堂)이다. 김집과 김상헌에게 글을 배웠다. 김수항ㆍ
송시열의 천거로 참봉이 되고 주부와 용담현령을 거쳐 세자익위사어에 이르렀다. 사림의 중망이 컸으며 절
의를 지켜 태백오현의 일인으로 일컬어진다. 증이조판서,시호 정민(貞敏). 사덕사에 제향되었다. 문집과
예기유회,일성록ㆍ이기록ㆍ예총요설 등이 있다.

-------이오당 정민공 강흡은 내용이 많아 생략함-------------


농민 계몽문학의 월계관,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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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생졸년;1901년-1936년. 호는 해풍. 연극,영화,소설 집필 등 여러 분야에 다능했다. 영화의 원작을 집필, 각
색, 감독, 제작 등 일인 4역까지 하여 한 때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조선일보, 경성방송국 등 언론기관에 몸
을 담기도 했다. 여러가지 장,단편 소설을 써서 신문에 연재하였다. 그 중 대표작인 [상록수]는 농민 계몽
문학으로 젊은이들의 의식을 크게 일깨워줬다.


청송 심문의 과환 더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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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문과[구서,항, 국현, 갱]
4대 문과[충겸,열,희세,권]

3대 문과[의신,영택, 상목]
3대 문과[유, 수현, 악]
3대 문과[황, 수량, 공]
3대 문과[명열, 관, 기태]

3부자 문과[이지,능익, 능필]
3부자 문과[수현,악, 필]

양대 판서[수,이조판서], [이지, 호조판서]
양대 판서[의면,형조판서], [이택, 이조판서]
양대 판서[응택, 판서], [상훈, 이조판서]
양대 판서[풍지,예조판서],[능악,예조판서]

3대 참판[의신, 영택, 상목]
양대 참판[관,공조참판],[기태,병조참판]

한 명의 대제학; 심순택

여덟 명의 문과장원 [이지, 의승, 경택, 상진, 악, 국현, 충겸, 반]

문과 급제 ; 총73명

현대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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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효공[심강]의 후손에 대표적인 인물로 민선 도지사 심대평이 있다.

---------인겸 후손-------

광세-은-약명 후손에 심갑보[삼익 LMS 부회장]

익의 후손에 재덕[대흥토건 전무] 재희[대흥토건 사장] 재욱[이사관] 재후[박사,학장] 4형제,

병조참판 기택 후손에 경섭[고교장] 재희[박사] 재철[박사] 3부자,

척의 후손에 재문[이사관] 재룡[사무관] 형제,

약섭 후손에 상길[의학박사] 명섭[박사, 교수] 지섭[의사] 3부자,

부윤 총 후손에 재복[중앙양조 회장], 재영[대령], 재건[이사관], 우섭[교수], 재운[중도학원 이사장], 우
섭[이강상사 사장],

능식-의년 후손에 재국[청우로프 사장] 재순[주택은행 지점장] 재진[서울대 졸] 재황[일명 재륜,서울 고
검 검사장 지절 높은 검사장으로 세간에 이목을 집중 시킨 법조계 거물] 4형제,

능식-의년-경택 후손에 종섭[유도히 회장] 재건[대성화확 사장] 부자. 진섭[종섭 동생, 한국정유 전무 이
사] 재강[교수 박사] 부자,

약황[현감]-부의 후손에 재완[박사] 재현[대구불교회장] 재인[재일본 경북도민회장] 3형제, 영희[박사 교
수],

광세-무의 후손에 재윤[박사], 문섭[선장],

정세 -----술지 후손에 재순[경찰국장],
정세----단 후손에 재영[약학박사] 재열[박사] 형제.
정세--언택-상은 아들 대섭[부산시 이사관], 상환 아들 우섭[의학박사] 정섭[원양약품 사장] 영섭[한국중
공업 부장] 명섭[한중원자력 부장] 4형제, 상석 아들 봉섭[영남의대 병원 부원장], 상기 아들 문섭[의학 박
사] 딸 연수[부군 이동원 교수] 딸 명숙[부군 대우 옥포 조선 전무] 3형제 자매

공조참판 명세----인서 후손에 원섭[박사 교수],

부사 장세 -----후손에 두섭[이진 건설 대표], 정일[상영정 대표이사].

** 지금까지의 거명된 모든 인물은 심의겸 혈맥이다. 심의겸의 아들 엄이 군수 인겸의 아들로 입양 계대되
었기 때문이다.***


----------지겸 후손---------

사섭[이사관,공사 교수] 재홍[의사] 부자, 충섭[송산건설 대표] 재광[의신학교 이사장] 부자, 강섭[이사
관]
강섭의 아들 재언[삼성이사] 재언 여동생 우진[부군 판사], 문섭[대령] 영철[박사, 태평양 연구 소장] 부
자, 양섭[고교장] 양섭 조카 재원[대한올림픽 상임위원], 은재[교수, 박사] 은재 부인 김민숙[박사 교수]
은재 동생 성재[박사 교수] 성재 여동생 미혜[박사], 재섭[대우이사] 재집[LG 영국 지사장]형제,

------신겸 후손---------

신겸-----약해 후손에 윤섭[고교장]
신겸----정방 후손에 상문[ 이사관] 종섭[행시] 부자, 상문 동생 상헌[한국 전기통신공사 연수원 교수],
신겸----정창 후손에 중섭[교수], 재훈[대우 상무], 재훈 삼촌 황섭[시인],
신겸-이-----광 후손에 성섭[서기관] 명섭[고교장] 용섭[지하철 감사실장] 형제, 달섭[이사관]

            경섭[대령] 형제

---------충겸 후손---------

병조판서 충겸-------수익 후손에 응섭[부이사관] 재옥[교수] 재인[서기관] 3부자,

---------효겸 후손-----------

효겸-------수점-양---능숙 후손에 용섭[문화재 전문위원] 종섭[중앙대 병원장 박사 교수] 형제, 우섭[대
령]. 상기[박사],
효겸------옥현 후손에 상무[박사 교수], 상훈[박사], 갑섭[방송공사 총국장].
효겸----------수진 후손에 용섭[부평 경찰서장]